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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달진문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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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엠큐read: 1021  
Subject   제14회 수상자 - 박정대, 이혜원 (2003)


제 14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작, 수상 소감, 심사평

시 부문 : 박정대(朴正大, 1965년 생)
수상작 「馬頭琴 켜는 밤」 외 4편
심사위원 : 신경림, 유종호, 정진규, 조정권


평론 부문 : 이혜원(李惠媛, 1966년 생)
수상작 「생명을 희구하는 비리데기의 노래-강은교 론」
심사위원 : 김재홍, 김선학, 이남호



◆ 시부문 당선작

<馬頭琴 켜는 밤>


밤이 깊었다
대초원의 촛불인 모닥불이 켜졌다

몽골의 악사는 악기를 껴안고 말을 타듯 연주를 시작한다
장대한 기골의 악사가 연주하는 섬세한 음률, 장대함과 섬세함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 모닥불 저 너머로 전생의 기억들이 바람처럼 달려가고, 연애는 말발굽처럼 아프게 온다

내 生의 첫 휴가를 나는 몽골로 왔다 폭죽처럼 화안하게 별빛을 매달고 있는 하늘
전생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던 시간이 지금 여기에 와서 멈추어 있다

풀잎의 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결이 인다 풀잎들의 숨결이 음악처럼 번진다
고요가 고요를 불러 또 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 그토록 오래 꿈꾸었던 사랑에 복무할 수 있다

대청산 자락 너머 시라무런 초원에 밤이 찾아왔다 한 무리의 隊商들처럼
어둠은 검푸른 초원의 말뚝 위에 고요와 별빛을 매어두고는 끝없이 이어지던 대낮의 백양나무 가로수와 구절초와 민들레의 시간을 밤의 마구간에 감춘다 은밀히 감추어지는 生들

나도 한 때는 武川을 꿈꾸지 않았던가 오랜 해방구인 우추안
고단한 꿈의 게릴라들을 이끌고 이 地上을 넘어가서는 은밀히 쉬어가던 내 영혼의 비트 우추안

몽골 초원에 밤이 찾아와 내 걸어가는 길들이란 길들 모조리 몽골리안 루트가 되는 시간
꿈은 바람에 젖어 펄럭이고 펄럭이는 꿈의 갈피마다에 지상의 음유시인들은 그들의 고독한 노래를 악보로 적어 넣는다

밤이 깊었다
대초원의 촛불인 모닥불이 켜졌다

밤은 깊을 대로 깊어 몽골의 밤하늘엔 별이 한없이 빛나는데 그리운 것들은 모두 어둠에 묻혀버렸는데 모닥불 너머 음악 소리가 가져다주던 그 아득한 옛날
아, 그 아득한 옛날에도 난 누군가를 사랑했던 걸까 그 어떤 음악을 연주했던 걸까

그러나 지금은 두꺼운 밤의 가죽부대에 흠집 같은 별들이 돋는 시간
地上의 서러운 풀밭 위를 오래도록 헤매던 상처들도 이제는 돌아와 눕는 밤
파오의 천창 너머론 맑고 푸른 밤이 시냇물처럼 흘러와 걸리는데 아 갈증처럼 여전히 멀리서 빛나는 사랑이여, 이곳에 와서도 너를 향해 목마른 내 숨결은 밤새 고요히 마두금을 켠다

몇 개의 전구 같은 추억을 별빛처럼 밝혀놓고 홀로 마두금을 켜는 밤
밤새 내 마음이 말발굽처럼 달려가 아침이면 연애처럼 사라질 아득한 몽골리안 루트

*마두금-악기의 끝을 말머리 모양으로 만든, 두 개의 현을 가진 몽골의 전통 현악기.


[수상소감]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뜻밖의 수상 소식을 듣고, 몹시 민망하고 당황하여 예전에 써놓았던 편지 한 통으로 수상 소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어제는 네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적막한 우편함을 쳐다보다가 이내 내 삶이 쓸쓸해져서, <복사꽃 비오듯 흩날리는데,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취하라, 劉伶도 죽으면 마실 수 없는 술이거니!>, 李賀의 「將進酒」를 중얼거리다가 끝내 술을 마셨다. 한때 아픈 몸이야 술기운으로 다스리겠지만, 오래 아플 것 같은 마음에는 끝내 비가 내린다.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환청에 시달리다 골방을 뛰쳐나가면 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는 소리가, 자꾸만 부서지려는 내 마음의 한자락 낙엽 같아 무척 쓸쓸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메마른 가슴에선 자꾸만 먼지가 일고, 먼지 자욱한 세상에서 너를 향해 부르는 내 노래는 자꾸만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한다.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음악의 한가운데로 별똥별들이 하얗게 떨어지고, 메마른 섬 같은 가을도 함께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낡은 기타를 매만질 때, 너는 서러운 악보처럼 내 앞에서 망연히 펄럭이고 있었다.

어제는 너무 심심해 오래된 항아리 위에 화분을 올려놓으며, 우리의 사랑도 이렇게 포개어져 오래도록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우젓 장수가 지나가든 말든, 우리의 생이 마냥 게으르고 평화로울 수 있는, 일요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밤새도록 몇 편의 글을 썼다. 추운 바람이 몇 번씩 창문을 두드리다 갔지만 너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 속 톱밥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톱밥이 불꽃이 되어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生도 언젠가 별들이 가져가겠지만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심히, 치열하게 매순간을 살겠습니다.
못난 작품을 혜안으로 밝게 읽어주신 유종호, 신경림, 정진규, 조정권, 최동호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평론 부문 당선작

생명을 희구하는 비리데기의 노래
―강은교론


[수상 소감]

김달진 문학상 수상 소식을 받고 한참 얼떨떨했습니다. 십여 년 전 신춘문예에 당선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무슨 복권 당첨된 것처럼 노다지를 만난 것처럼 좋았고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으로 한 며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놀랍고 기쁘고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상을 탈만큼 열심히 했는가도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도 앞섰습니다.
평론이라는 별난 일이 언제부터 저와 인연을 갖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다 보니까 국민학교 3학년 때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학교에서 몇 명을 추려 날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였습니다. 한참 놀아야 할 방과 후 시간에 붙잡혀 날마다 무언가를 써야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으면서도 그 일에 묘한 재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책을 그냥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견을 덧붙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독후감에 제 생각을 많이 드러낼수록 칭찬 받았던 것 같습니다. 글짓기 시간과는 다르게 남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니까 더 편하고 쉬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는 평론의 매력은 바로 이런 대화의 성격에 있습니다. 평론은 공허한 독백이 아니라 최소한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대화의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평소에도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저로서는 남의 글을 잘 읽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평론이 적격인 듯도 싶습니다. 그렇지만 평론이 발전적인 대화가 되려면 그저 잘 들어주는 데서 나아가 비판도 가하고 방향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저의 공부와 용기가 부족한 것을 절감하며 무거운 과제로 떠안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김충렬 선생님의 동양철학 강의를 들으며 행복했습니다. 도가와 주역을 강의하시면서 늘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득 차면 넘치게 되고 최선을 다하면 죽는 법이니 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의 에너지가 약하고 느린 저 같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조금 더 잘해볼걸, 이것밖에 안될까라는 자책이 들 때마다 그 말씀을 떠올리며 변명으로 삼았습니다. 조금 모자라는 것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되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게으르지는 않지만 서서히 나아가는 길로 가겠습니다. 조금씩 꾸준히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넘치는 영광을 부여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써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평론을 시작하도록 좋은 가르침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은사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선후배, 동기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주시는 부모님들과 곁에서 고락을 함께 하는 가족들에게 저의 수상이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조그만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위에 앉았다”라는 김달진 선생님의 시 「샘물」을 좋아합니다. 그분의 고요한 정진과 고고한 정신을 존경합니다. 화려하지 않게,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저의 길을 걷겠습니다. 수상의 기쁨을 먼길의 양식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이혜원




◆ 시 부문 심사평

<유장한 가락과 건강한 야만성>

신경림(시인)

역대 수상자들의 추천을 거쳐 올라온 작품 중 박정대의 시가 가장 두드러졌다. 먼저 유장하다면 유장하고 길다면 긴 호흡이 눈길을 끈다. 최근 우리 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시이다. 너무 말초적이고 미시적인, 또는 짧고 각박한 호흡이 우리 시를 왜소하게 보이게 하는 대목은 없는가 라고 말하는 소리를 여럿한테서 들어온 터다. 이 점만 가지고도 박정대의 시는 평가받을만하다.
“연애는 말발굽처럼 아프게 온다”나 “폭죽처럼 화안하게 별빛을 매달고 있는 하늘”, 또는 “두꺼운 가죽부대에 흠집 같은 별들이 돋는 시간”(이상 ‘마두금 켜는 밤’) 같은 비유는 아마 다른 시인의 시에서였다면 유치한 것으로 전락했을는지도 모른다. “사랑은....비열한 소통....”, “사랑은....장렬한 소통....”, “사랑은....여렬한 고독의 음악....”(이상 ‘산초나무에게서 듣는 음악’) 같은 아포리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박정대의 시에서는 이것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의 비유나 상징으로 승화되고 있는 점,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그의 시들이 단순하게 말이나 이미지의 조작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동반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확대 해석해도 좋을 단서를 제공해 준다.
문명에 대립하는 원시나 자연, 지성과는 반대되는 개념의 <힘>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도 그의 시의 매력이다. 가령 「눈먼 무사」에서 무사는 시인일 수도 있지만 보편적인 인간으로 읽어도 좋을 터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눈멂” 즉 불행은 “복사꽃 사이로 날아다니던 호랑이들”의 상실에서 비롯됨을 이 시는 암시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메시지가 유장한 가락과 썩 잘 어울리면서 시로 하여금 건강한 야만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소재가 평범하지 않은 것도 그의 시의 큰 미덕 중의 하나임은 말할 것도 없다.



<호방하고 참신한 사랑시편>

유종호(시인․연세대 석좌교수)

박정대의 「馬頭琴 켜는 밤」은 호흡이 길고 활력이 넘치는 시편이다. 호방하고 신선하며 아주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몽골의 악기 마두금에 대해서 시인이 얘기하고 있는〈장대함과 섬세함〉을 갖추고 있으며 처음부터 독자를 압도한다. 소재나 형태나 이색적이고 참신하다. 또 이역의 풍물에 대한 싱싱한 비유도 생기와 실감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밤이 깊었다
대초원의 촛불인 모달북이 켜졌다.
(중략)
내 生의 첫 휴가를 나는 몽골로 왔다 폭죽처럼 화안하게 별빛을 매달고 있는 하늘
전생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던 시간이 지금 여기에 와서 멈추어 있다.

「사랑의 적소」와 「눈먼 무사」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기지가 있고 슬픔이 있고 갈망이 있고 허무가 있고 깊이가 있다. 호흡이 길어지면 대개 수다스러워지게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것은 「사랑의 적소」에 보이는 자재로운 변화와 의식의 예기(銳氣)때문이다. 「산초나무에게서 듣는 음악」 또한 매력있는 소품이다. 이번 시편들이 규모에서나 발상법에서나 시집 ꡔ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ꡕ 수록 시편과는 면목을 사뭇 달리한다.
박정대씨의 활달한 진경(進境)과 수상에 박수를 보내며 지속적인 정진있기를 바란다.



<박정대의 시와 활달성>

정진규(시인․현대시학 주간)

우리시의 난해성을 말할 때는 추상성의 언어에 의한 지적 조작의 저 모더니즘의 시들에만 국한해온 것이 그간의 시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요즈음의 시들을 보면 그런 것만이 아니다. 전통 서정의 시들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맥이랄까 그런 화법들이 끼어들고 있다. 이번 심사를 하면서 그걸 새롭게 느꼈다. 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러함들은 백석류의 방언이나 독립된 단어 자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묘한 비틀기나 굴절 우회로 그 애매함이 빚어내는 시의 새로운 행간이 조형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어눌했다. 선시류의 유행이 가져온 자기만의 방언일까. 혹은 이른바 화두일까. 물론 시가 단순히 노래만이 아니라 깨달음의 그것일 수도 있지만 난공불락의 그것은 아니질 않는가. 초월의 저쪽도 벼락치듯 혹은 스며들 듯 다가오질 않으니 난감했다.
장석남 시인의 시에서도 이런 점들이 전에 없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의 좋은 감성들이 그 어눌로 적잖이 차단되고 있었다. 「옛 친구들」이라든지 「石榴 나무 곁을 지날 때는」과 같은 성공적인 시편들도 있었으나 다른 시편들은 대부분 독단의 어떤 것들이라고 느껴졌다. 왜 이렇게 그는 외로워져 있는 것일까.
박정대의 시편들은 근간의 그의 작업들이 좀 어수선하고 따라서 너무 다변이라고 느껴왔던 것이 사실이나 지난해의 그의 시편들을 다시 읽으니 그렇지가 않았다. 우선 저 문맥의 어눌함들이 보이는 난해성이 보이지 않았다. 활달했고 또 신선했다. 「馬頭琴 켜는 밤」, 「눈먼 무사」, 「사랑의 적소」 등을 비롯한 시편들은 시의 공간 설정에 머뭇거림이 없었고 때로는 시의 구조가 단순하지 않은 극적 요소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활달성이 자칫 잃기 쉬운 내면의 응축과 긴장에 있어서도 소홀함이 없었다. “고단한 꿈의 게릴라들을 이끌고 이 地上을 넘어가서는 은밀히 쉬어가던 내 영혼의 비트 우추안”(「馬頭琴 켜는 밤」에서)이라든지 “내 안의 날숨과 들숨이 세상을 향해 뚫어놓은 작은 통로, 맑고 차가운 숨결들이 누 떼처럼 넘나드는 저 벅찬 통로, 날것들이 생생하게 드나드는 저 生의 경계선”(「눈먼 무사」에서) 같은 대목에서 우리는 그의 저러함들을 집약적으로 만날 수가 있다. 종전의 김달진 문학상 수상작품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고 싶었다. 축하한다.



<대초원의 어둠에서 켜는 노래>

조정권(시인)

수상후보작으로 오른 시인은 6명이다. 장석남, 정끝별은 이미 다른 상 심사 때 마주친 바 있는 작품들이었다. 나는 박주택, 이윤학, 장옥관의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즐겁게 서성댔다. 모두들 시적 상상력의 새로움이나 긴장의 느슨함을 잃지 않고 안정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서성댔다는 건 이 안정성 앞에서이다. 그것이 좀 지나치다 싶은 게 지난해 심사에도 만난 바 있는 이윤학의 작품들이었다. 장옥관은 새로운 변모를 보이긴 하지만 그의 문법이 지나치게 굳어가지 않나 하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었다. 눈도 생각도 같이 늙어간다는 것, 그리하여 시가 일상의 세목 속에 서 삐져 올라온 송곳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 이런 불만은 사실 요즘의 시에 대한 사사로운 불만이지만 근년 들어 왕성하게 시작활동을 해온 박주택의 경우 시들이 더 길고 세밀한 호흡으로 뻗어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멈춘 아쉬움이 들었다. 아코디언이란 악기는 응축할 때만 소리가 모아지는 게 아니라 펼쳤을 때도 소리가 나는 것 아닌가. 그동안 우리시는 응축에만 힘을 모아온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막상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면 평소에 별 느낌 없이 무관심하게 읽고 지나간 시가 상대적으로 눈길을 끄는 수가 있다. 태고의 혼을 불러일으키는 박정대의 「마두금 켜는 밤」이 그러하다. 일본 신디사이저 연주자 키타로(喜多郞)가 야쿠시지 신사에서 티벹 혼을 불고 있다면 박정대는 대초원의 어둠속에서 몽골 악기를 켜고 있다. 「사랑의 적소」도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 어법과 형식이 중간중간 작의로 인해 거슬리는 면도 있지만 좀 거슬리면 어떤가( 요즘 시에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는) 그 뱃장이 맘에 든다.



◆ 평론 부문 심사평

<비평적 인식과 견실한 평문>

김선학(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

심사에 올라온 네 사람의 평문들은 모두 당대의 비평적 인식에 충실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당대의 비평적 인식이란, 얼마간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분석적이고 미시적인 작품에의 접근방식이다. 비평을 2차적인 언어라고 했을 때 비평의 대상인 작품자체가 미시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평의 종착지가 작품의 가치―그 문학적 성취도를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면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접근은 상보적 관계의 틀 속에 있어야 할 것이란 판단이다.
이광호와 김춘식의 평문들은 거시적이고 통시적 관점에서 작품에 접근하려고 했지만 결국 미시적인 관점에의 회귀로 거시적 파악을 일탈하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형국이 되고 말았다. 정효구의 평문들은 이들과는 달리 미시적인 관점-작품분석에 너무 치우쳐 나무는 보되 정작 숲은 못 본 결과가 되었다고 파악했다. 이혜원의 평문에서는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관점의 상보관계를 비교적 지키면서 작품에 접근하는 형평감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의 연대기적 서술에 편향되고 있는 것은, 설령 그것이 연대기적인 것을 요구하는 편집자의 주문에 의해 쓰여졌다고 해도, 극복되어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많은 논의 끝에 이혜원의 평문을 당선작으로 합의하는 데 동의한 것은 무엇보다 견실한 평문의 문체적 특성도 다른 덕목들과 함께 크게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진일보한 발전적 변화를 기대하고자 한다.


<경륜과 참신성>

김재홍(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평론부문 본심에 회부된 작품은 정효구의 「생명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최승호의 시 한 편 읽기」외, 이광호의 「시선의 시학과 관음증의 정치학」외, 김춘식의 「구원을 묻는 글쓰기-21세기 비평의 지형도」외, 그리고 이혜원의 「생명을 희구하는 바리데기의 노래」외 등이었다.
관례에 따라 심사위원 각자가 두 명씩 추천하여 많이 추천된 사람의 비평작품을 의논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정효구의 비평문들과 이혜원의 작품들이었다.
정효구는 이미 중견의 위치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온 바 있고, 수상 경력도 몇 차례 있어서 그 비중이 만만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이혜원은 신진비평가로서 최근 들어 부쩍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장점으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 정효구의 비평은 최승호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간의 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안타까움을 던져주었다. 이에 비해 강은교 시인론인 이혜원의 글은 보다 체계가 잡혀있고 깊이가 있어서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이혜원의 비평문은 균형감각과 대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열린 정신을 담보하고 있는 모습이어서 앞으로의 가능성에 신뢰를 보낼 수 있었다. 요컨대 경륜이냐, 참신함이냐 하는 문제였는데 이를 쉽게 선택하게 만든 것은 시쪽의 수상자가 젊은 시인으로 선정됐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에 균형을 맞추는 것은 비평부문도 역시 젊은 사람 쪽이 어떻겠느냐하는 논의로 결집되어 결국 이혜원을 수상자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최종심사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최종심에 오른 경우들은 그 어느 것이라 하더라도 다 충분히 수상의 자격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수상자의 정진과 앞날의 문운을 빌어마지 않는다.


<성실한 해석으로서의 평론>

이남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세상의 변화에 따라 문학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문학평론의 역할이 중요하나, 현재 문학적 담론으로서의 문학평론이 관심을 끌지 못하고, 구석진 독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문학 전반의 쇠퇴라는 시대적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문학평론이 의미 있는 담론을 생산해 내지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문학의 고유한 매력과 가치를 잘 살려내는 평론이 드물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정효구씨와 이혜원씨의 시 평론은 이런 아쉬움을 달래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효구씨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시 평론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 평론은 시의 아름다움과 매력과 소중함을 널리 알린다. 시에 대한 그의 안목은 신뢰할 만하며 시에 대한 그의 지혜로운 사랑은 존경할 만하다. 그리고 그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평론 문체는 시의 맛을 되살려내는데 적절하다. 최근에 펴낸 두 권의 책 ꡔ시 읽는 기쁨ꡕ은 일반독자들에게 시의 세계를 친절하게 안내할 뿐만 아니라 전문 독자들에게도 시 속의 숨은 길을 섬세하게 알려준다.
이혜원씨 역시 주목할만한 평론을 꾸준히 발표하는 시 평론가이다. 그의 시 평론의 장점은 보편타당성과 성실성이다. 그는 한 시인에 대해서건 아니면 한 편의 시에 대해서건 성실한 해석자의 입장에서 접근한다. 그의 해석은 기발함보다는 충실함을 보여준다. 평자의 관점을 강요하기보다는 시인이나 작품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한다. 이런 태도는 가령 「생명을 희구하는 비리데기의 노래」같은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글에는 시인 강은교의 전모가 모범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정효구씨와 이혜원씨 두분 모두 수상의 자격이 충분한, 우리 시 평론계에서 소중한 분들이다. 그러나 숙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이혜원씨를 수상자로 결정했고, 나 역시 그 결정에 동의했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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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4.03 -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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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view제12회 수상자 - 나희덕,고형진 (2001)  포엠큐 2006.04.03 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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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view제10회 수상자 - 최정례,이숭원 (1999)  포엠큐 2006.04.03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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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view제9회 수상자 - 남진우, 신덕룡 (1998)  포엠큐 2006.04.03 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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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view제8회 수상자 - 고진하 (1997)  포엠큐 2006.04.03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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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view제7회 수상자 - 송수권 (1996)  포엠큐 2006.04.03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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