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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강은교, 최동호, 『드므에 담긴 삽』-서정시학 시인선 통권 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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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 시인선의 새출발을 알리는 통합시집이 발간되었습니다. 이 시집은 강은교, 최동호를 비롯한 문단의 중견시인들과 함께 오늘의 젊은 시인들까지 참여하고 있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삽>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드므>
-정다운
고무 다라이를 끌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그 동네엔 빨래터가 있어서 엄마는 자리 맡으라고 먼저 보냈었지만 발로 깨놓은 얼음 다시 아무는데도 아무도 올라오지 않길래
불길이 집 안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가 나간 뒤 여자는 제 집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는데 그리고 문을 닫아버렸다는데, 다라이에는 양말 수켤레 바람 든 비누 한 쪽 나는 질질 끌면서 엄마를 뛰어 들어가고
아직도 다라이에 물 받아 얼굴을 씻는다 드므, 라는 넓적한 독 불귀신은 장난하러 왔다가 거기 비친 제 얼굴을 보고 도로 달아나버린다지 그 독 안에는 물, 물이 아니라 거울, 머리를 담글 때마다 불에 욱어버린 얼굴이 잠깐 보인 것도 같고
한 독 언 물로는 도무지 끌 수 없었던 그 골목의 방화-몹시 짖던 벽사의 개처럼, 파랗게 눈을 켜고 으르렁거리는 밤이면 얼굴에 오려붙인 엉덩이살은 혼자 놀라 일그러진다, 꽝꽝 언 한 겨울의 드므
참여시인들
김종길, 정진규, 최하림, 유안진, 천양희, 조오현, 이건청, 오세영, 강은교, 문정희, 노향림, 조정권, 이하석, 신달자, 김명인, 김승희, 한영옥, 이준관, 송수권, 이영춘, 최동호, 이상국, 송재학, 이성복, 김혜순, 손종호, 박태일, 남진우, 이문재, 김완성, 문인수, 김경미, 박주택, 고진하, 장옥관, 허혜정, 정끝별, 김기택, 나희덕, 이희중, 차창룡, 박정대, 이선영, 이윤학, 이진명, 조용미, 최정례, 맹문재, 박형준, 고두현, 이정록, 강신애, 문태준, 이장욱, 장철문, 김수우, 김참, 이현승, 권혁웅, 박종국, 배용제, 고찬규, 손택수, 신해욱, 유홍준, 김행숙, 신용목, 여태천, 방민호, 장만호, 곽효환, 장석원, 하재연, 이근화, 박원, 정다운, 박미산.
-시집서문-
<서정시학 시인선>은 한국인들의 역동성과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집을 연속적으로 간행하여 디지털 시대에 위기에 처한 인간 정신을 지키고 이를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달걀을 깨서라도 신대륙을 발견하려는 문화적 발상과는 달리, 달걀 자체는 숭고한 생명체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생명의식을 가지고 역사 지평을 열어 나가고자 한다. 이것이 환경오염과 소외와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에 억눌린 인간의 존엄성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물레를 돌린 간디의 자세를 하나의 거울로 삼는다. 주체성을 가지고 허세를 경계하면서 좋은 시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이 항해는 멀고 험난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첫 시집이자 합동시집인 『드므에 담긴 삽』은 시력 60년에 이르는 원로 시인부터 2006년에 등단한 시인까지 참여하여 풍성한 출발을 알리고 있다.
우리의 항해에 기꺼이 동참해준 선후배 시인들께 감사드리고, 더욱 굳힌 자리를 함께 마련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서정시학 시인선>이 맞는 봄 햇살은 참으로 상쾌하다.
-편저자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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